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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신라의 9주 5소경과 양주(양산)총관 김서현 장군
관리자 2018-02-08 조회 9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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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라의 9주 5소경과 양주(양산)총관 김서현 장군

 

고대 양산은 부산, 울산, 대구 등 담당했던 거대 행정중심도시 신라 합병 이후 ‘삽량’보다 ‘양주’ 지명에 주목

논란 중인 박제상 관련 사업보다 양주총관 김서현 장군 연구 통해 김유신 장군 연계 사업 구상 필요

우리가 살고 있는 양산시의 역사와 문화는 알면 알수록 무척 찬란하다. 불과 10년 전만 하더라도 남북국시대(통일신라시대)의 찬란한 과거 위상과는 달리 부산, 울산, 김해, 창원시에 둘러싸인 중소도시였으니 말이다.

지금은 그나마 이러한 도시발전 영향으로 양산시도 도시 발전이 이뤄졌고, 인구 유입도 꾸준히 증가해 이젠 제법 중견도시로서 면모를 찾아가고 있다. 그러나 갑자기 커진 도시 발전에 비해 아직까지 제대로 정립되지 못한 정책 중 하나를 들자면 바로 문화라 할 수 있다.


그동안 양산시가 중견도시 기틀을 마련하기 위한 정책에 노력했다면 이제부터는 시민 삶의 질을 높일 수 있는 문화에 대한 정책을 적극 반영해야 한다고 생각된다.


사실 찬란한 양산이란 글의 표현처럼 1300년 전, 고대 양산의 역사와 문화는 양산시 역사 중에서 가장 찬란한 꽃을 피웠던 시기임은 분명하다. 남북국시대(통일신라시대) 양산시를 현재의 도시 상황과 비교해보면 우리나라 수도가 있는 서울특별시를 둘러싼 경기도의 도청소재지인 수원시 정도에 비유할 수 있을 것이다.

      《삼국사기》 〈지리지〉에 기록된 9주의 이름은 상주(尙州), 양주(良州), 강주(康州), 한주(漢州), 삭주(朔州), 명주(溟州), 웅주(熊州), 전주(全州), 무주(武州)로서 9주 소관 군현 수는 450군현에 이르렀다. 이 중 지금 양산에 주치를 둔 양주의 이전 지명은 5세기 초 박제상과 관련된 『삼국사기』 권45 열전5 박제상 및 『삼국유사』 기이2 김제상조에는 ‘삽량촌(歃良村)’ 또는 ‘삽라군(歃羅郡)’으로 기록돼 있다.


양주의 지명에 대한 기록은 『삼국사기』 권34 잡지3 지리1의 “양주는 문무왕 5년, 인덕(麟德) 2년(665)에 상주(上州)와 하주(下州)의 땅을 분할하여 삽량주(歃良州)를 설치하였고, 신문왕 7년에 성을 쌓고, 경덕왕이 이름을 양주(良州)로 고쳤다”라는 기록이 있어 양주는 685년에 지명이 등장한 것을 알 수 있다. 양주는 당시에 12개 군(郡)과 34개 현(縣)을 관장했다고 한다.

이를 통해 보면, 고대 양산은 지금의 부산, 울산, 밀양, 청도, 대구, 경산, 창원 등과 양주 내 금관소경인 김해까지 관할하는 거대한 행정중심도시였음을 알 수 있다. 이런 점으로 보아 양산시에서는 신라 합병 이후 양산은 ‘샵량’이라는 지명보다 ‘양주’라는 지명에 대한 중요성을 부각할 필요가 있으며, 그 이전에 존재한 고대 양산의 가야국명(삽라국, 사라국)에 대한 연구는 지속적으로 연구돼야 할 것이다.

   한편, 양주총관으로 기록된 인물 중에는 신라 삼국통일 주역인 김유신 장군의 아버지인 김서현 장군이 유명하다. 김서현 장군은 7세기 전반에 활동한 인물로서 관등이 각찬(角飡: 17관등 중 제1위)에 까지 이르렀으며, 관직은 소판(蘇判) 대량주도독(大梁州都督) 안무대량주제군사(安撫大梁州諸軍事)에 이르렀다고 한다. 양주총관(摠管)이 돼 여러 번 백제와 싸워 그 예봉을 꺾어 변경을 침범하지 못하게 했기 때문에 변방 백성들은 편안히 농사짓고 누에를 쳤으며, 군신은 국가 일에 골몰하는 근심을 없게 했다고 한다.


이러한 김서현 장군의 무덤을 양산시 향토사학자 중에는 양산부부총이 김서현 장군과 만명부인의 무덤일 가능성이 있다는 의견을 제시하기도 한다. 그러나 양산부부총은 5세기 후반~6세기 전반에 축조된 신라의 석실분으로서 7세기 전반에 활동한 김서현 장군 무덤이 될 리는 만무하다.


이렇듯 제대로 된 지역사를 정립하기 위해서는 양산시 역할이 매우 중요하다. 이전 칼럼에서 지적한 바와 같이 행장관청에서 조차 ‘샵량주 시대’라는 혼동된 용어, 그리고 6세기대의 석성인 우불산성을 3세기대에 울산지역에 존재한 우시산국의 성으로 기사화된 내용은 두 번 다시 발생하면 안 될 일이다.

  다행스럽게도 최근에 양산시도 지역사 정립을 위한 예산을 반영해 서서히 문화정책에 대한 관심을 가지고 계획을 세우고 있다. 또한 근래 정부의 가야사 복원정책에 발맞춰 신라로 병합되기 이전 고대 양산의 국명과 성격에 대한 지역사 정립은 이미 실행 중에 있기도 하다.


그러나 이미 울산과 경주에서 먼저 시행한 신라 재상 박제상과 관련된 각종 사업은 아직도 출생지에 대한 논쟁이 진행 중에 있으며, 사업구상이 상기 지역에 비해 뒤늦은 감이 많아 성공사례로는 보이지 않는다. 차라리 지금부터라도 양주총관으로 있었던 김서현 장군에 대한 학술연구를 추진해 김유신 장군과 연계한 문화정책을 펼치는 것이 더 낫다고 본다.